길 찾기도 부지불식간에 잃어버린 능력 중 하나다. 어느 날부터 차에 오르면 내비게이션을 켜고 주소를 입력하는 게 자연스러운 순서가 됐다. 이전에 몇 번을 가 본 곳도 실수 없이 운전해 갈 수 있을지 자신이 없어서다. 좌회전, 우회전 지시를 따라가기 바쁘니 동네와 이름이나 길의 흐름이 눈에 들어올 리 없다.
하지만 최근에 등장한 신기술들은 파급력이 심상찮아 보인다. 인간의 본질적인 능력인 선택과 주의집중 능력을 빠르게 퇴화시키고 있어서다. 요즘 유튜브와 틱톡 사용자들은 이전보다 검색 버튼을 덜 누른다. 인공지능(AI)이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사용자들의 사용기록을 분석해 입맛에 딱 맞는 콘텐츠를 끊임없이 토해내기 때문이다. 나보다 더 나를 잘 아는 AI가 나 대신 선택의 권한을 행사해주고 있다는 얘기다. 쇼핑 플랫폼도 마찬가지다. 구매와 검색기록 등을 참고해 기가 막힌 타이밍에 내가 사야 할 물건을 제시한다.
주의집중 능력도 AI 알고리즘 앞에선 풍전등화다. 클릭을 부르는 취향 저격 콘텐츠, 지금 접속하지 않으면 손해를 볼 것만 같은 보상 시스템의 힘이다. 아무 생각 없이 스마트폰을 보고 있노라면 서너 시간이 후딱 지나간다.
신기술로 무장한 플랫폼의 ‘사용자 주의 강탈’ 시도는 앞으로 더 노골화할 것으로 전망된다. 애플은 최근 확장현실(XR) 헤드셋 ‘비전프로’를 내놨다. 12개의 카메라, 5개의 센서, 6개의 마이크를 장착한 제품으로 현실과 흡사한 메타버스 환경을 경험하게 해 준다. 2차원 모니터에 국한됐던 자극이 3차원 입체공간으로 넓어지면 AI 알고리즘의 파괴력은 한층 더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.
이제 와서 새로운 기술의 흐름을 뒤로 돌리기는 불가능하다. 플랫폼 기업을 규제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. ‘사용자 체류시간=수익’이라는 플랫폼의 속성 때문이다. 결국 해법은 플랫폼에 휘둘리지 않는 ‘나만의 나침반’을 만드는 것뿐이다. AI 등의 신기술을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깊이 빠지면 노예가 될 수 있다는 점도 함께 염두에 둬야 할 것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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